Shade of the Void
나는 해소할 수 없는 모순으로 인한 결핍을 앓았다. 죄의식의 채찍질에 시달리면서도 내가 가진 욕망에 충실했고, 그렇게 좇은 욕망은 소유의식이 되었고, 소유의식은 집착이 되었다.
그러나 간절히 원할수록 내부의 결핍은 커져갔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며 계속 목말라하는 것과 같았다.
그 끝없는 갈증의 원인이 무엇일지 오래 고민했다. 찾은 답은 결국 불완전함이었다.
내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내면의 충돌이 일어나고, 욕망은 그 충돌을 해소하려 일어나는 것이었다.
빛의 존재로 인해 어둠이 존재하고, 빛이 강할수록 어둠은 짙어진다. 어떤 한 부분의 의식이 강해질수록 그 반대편의 의식도 강해지는 법이었다. 불완전한 나는 완전함을 좇아 하나만을 향해 내달렸고 이는 당연하게도 더욱 강한 반대편과의 괴리 그리고 충돌을 불러왔다. 완전의 추구가 깊어질수록 괴리는 깊어졌고 괴로움은 더해져만 갔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유有의 상태에서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자는 진리는 물과 같다고도 하였다. 칼로 자른 듯한 경계선 없이, 낮에서 밤으로 하루가 변하듯,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라는 경계를 온전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나'를 구성하는 의식은 너무나도
견고해 물처럼 흐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려 하고 그로 인해 더욱 결핍되어가는 모순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충돌할 것이다.
채울 수 없는 것을 채우고자 하는 이유는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함이다. 불타고 녹아 없어지는 것은
죽음이자 동시에 또 다른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가능하지 않은 완전을 향해 나는 나의 고유한 모양을 없애고 녹이고 태우려 들었다. 없어짐으로서 만들어지는 것, 그 과정이야말로 온전한 형태의 상호의존이 아닐까. 아我와 비아非我가 부딪히고 경합하여 충돌하여 서로를 존재하게 해주는 과정.
내면의 충돌은 결국 이런 식으로 양극단의 것들끼리 일어난다. 양극은 곧 표면과 이면이고, 표면과 이면은 닮아 통한다. 어둠은 빛의 부재인데 빛은 그릴 수 없고 어둠은 그릴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나타나지 못하고 부재하는 것은 어떻게든 나타난다.
즉 부재를 보면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액체로서 있다가 종이에 흡수되고 남은 자국, 빛이 비췄기에 만들어진 그림자가 이를 보여준다. 자국, 흔적, 이것들은 부재이자 동시에 본질의 존재를 알리고 남은 또 하나의 존재이다. 부재를 통해 인지하는 존재는 곧 존재와 부재 사이를 매개하는 매개항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 모든 우연들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장면들.]
그림에 담아내려 애썼던 모든 의식과 목적, 의도를 배재한 순간 가장 완전함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자연과 사람이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아름답게 여겨진다.
내 의도와 계획이 없어지는 과정이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 같다. 그 명상 속에서 나는 양극단의 것들을 매개한다. 종이라는 공간 속, 형태없는 물의 성질이 바탕재에 흡수되는 순간, 가장 무無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전한 무無, 즉 완전한 것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 황홀감은 잠깐이다. 곧이어 종이에 남은 자국을 마주하게 될 때면 오히려 나는 나의 부재를, 즉 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라는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한다.
노자는 인간이 '나'라는 의식(意識)을 자기의 몸속에 넣음으로써 혼돈에서 분리되어 나온다고 하였다.
그 분리, 균열은 본질적으로 불완전의 것이다. '나'라는 의식이 성립된 이상 불완전한 인간일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고, 불완전함 속 완전추구의 흔적들을 담아내어 그 사이를 오가며, 형태 없는 물이 되어 끝없는 갈증을 해갈하려 하는 것이 작업의 여정일 것이다.
![]() 이면장지에 염색, 채색_150×126Cm_2021 | ![]() 표면장지에 염색, 채색_150×126Cm_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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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 그림자장지에 염색, 채색_75×64Cm_2021 | ![]() 존재장지에 염색, 채색 _ 115×91cm _ 2021 |
![]() 부재장지에 염색, 채색 _ 115×91cm _ 2021 | ![]() 잠긴 숨, A breath of sea장지에 염색, 채색_86×48Cm_2021 |
![]() 빈 숨, A breath of void장지에 염색, 채색_76×51Cm_2021 | ![]() 흡수장지에 염색, 채색_50×50Cm_2021 |
![]() Obsession천에 염색,채색 _2021 | ![]() Phoenix장지에 염색, 채색 _ 148×112cm _ 2021 |
![]() Gnomus(Crescendo)Gnomus(Crescendo)/ 51.5x36.5(Cm)/ 종이, 비단 위 염색 후 배접, 채색/ 2019 | ![]() Craving장지에 채색 _ 25×38cm _ 2020 |
![]() 구애구애/ 153x93(Cm)/ 장지 염색 후 채색, 천배접/ 2020 |